연작소설 『호서극장』을 발표하여 새로운 공간 중심의 이야기를 풀어낸 김홍정 소설가가 장편소설 『린도스 성의 올리브나무』를 〈도서출판 등〉에서 출간했다. 코로나19로 여행 중지로 인해 허기에 지친 독자들에게 그리스 로도스 섬 남동쪽 해안에 위치한 린도스 성 일대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와 신화 속으로의 나들이를 만끽할 수 있는 장편소설이다. 여름휴가에 지니고 갈만한 작품으로 손색이 없는 선명하고 탄탄한 구성과 특징 있는 인물들이 펼치는 회화예술에 대한 열정과 치열한 사랑이 돋보인다.
마치 꼬리잡기를 연상케 하는 연인들의 만남과 헤어짐은 로도스 섬과 린도스 성 광장에 남은 올리브나무를 통해 신화가 되고, 공주 공산성의 당산나무와 조화를 이루어 시공을 넘나든다. 그럼에도 철저하게 현실성을 갖추고 판타지 경향성을 배제한다. 그림을 그리러 떠난 여인 연서, 연서를 찾아가는 나, 나에 집착하는 중국인 주루와 로도스 섬의 여인들은 현실에 펼쳐질 신화 속의 인물처럼 아름다우나 풍성한 감정과 연민으로 일상을 벗어난다.
김홍정 소설가는 흔적을 파고든다. 소도시 공주의 호서극장 주변 사람들에 깊이 자리한 연민의 흔적이 연작소설 『호서극장』이라면, 대도시가 유발하는 오류와 억지, 모순의 상처로 방황하는 현대인들의 자폐성이 치유되는 공간으로 설정한 린도스 성은 새로운 올리브나무 신화를 이룬다. 『린도스 성의 올리브나무』는 의외로 간결한 호흡으로 속도감 있는 이야기를 엮어 새로운 신화 쓰기의 면모를 보여준다. 어쩌면 작가는 치유가 절실한 현대인의 상처를 외면했던 문학의 영험성을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현실을 떨치고 나선 인물들은 신화의 주인공이 되어 제 자리로 돌아온다. 그들의 자리는 성공한 이들이나 영웅이 아닌 동네 사람이다. 이제 동네 사람들이 신화의 주인공이 된다. 그들이 바람을 맞으며 대륙을 걸었고, 바다를 건넜고, 성을 올랐다. 김홍정 소설가는 그들에게서 새 신화의 흔적을 찾는다.
저자 : 김홍정
공주사대 국어과 졸업. 충남작가회의
대하소설 『금강』 (전10권)
소설집 『창천이야기』 연작소설 『호서극장』
장편소설 『의자왕 살해 사건』 『린도스 성의 올리브나무』
공주문학상, 2020 충청남도 올해의 예술인상(대상)
그리스 로도스는 신들의 속삭임이 현실에서 어우러지는 곳이다. 로도스 동남쪽 끝 린도스 성에 기둥과 일부 벽이 남은 아테네 신전 바닥을 뚫고 사는 올리브나무는 작가가 살고 있는 공주 공산성의 느티나무와 다를 게 없다. 느티나무는 금줄을 두른 당산나무의 흔적을 지닌다.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것은 흔적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 흔적이 이야기가 되어 흐를 때 비로소 작가는 눈물로 받아들인다. 작가의 문을 열고 선뜻 들어서는 이들을 사뭇 그리워하는 것은 그들이 강을 건너고, 바다로 나가 고독한 그곳을 향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여행에서 돌아온 몇 해 동안 공산성을 걸었다. 공산성에서 그림을 그리는 이들을 보았다. 문득 그림을 글로 쓸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꼬리잡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다. 우리의 삶이 놀이의 연속이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 소설 『린도스 성의 올리브나무』를 「도서출판 〈등〉」 소설선 첫 작품으로 올리게 되어 기쁩니다. 또 걱정이 앞서지요. 늘 마수걸이는 간절합니다. 새 하루를 열기 때문이거든요. 독자들의 관심은 작가의 난전을 여는 마수걸이입니다. 고맙습니다.